익선동
익선동은 태조 5년(1396) 한성부 중부의 정선방에 속하였으며, 영조 27년(1751)에는 중부 정선방의 돈녕부상계와 돈녕부하계에 속해 있었다. 1895년에는 한성부 중서(中署) 정선방 돈녕계의 돈녕동·한동·익동·루동·궁동·니동 지역이었다. 1910년 한성부 중서에서 경성부 중부로 바뀌었고, 1911년 개편된 중부 정선방의 궁동·익동·돈녕동과 니동·한동 일부 지역이 1914년 새로 통합되면서 익선동으로 칭하였다. 익선동이라는 동명은 1914년 동명 제정 때 조선시대부터 이 일대 동리명 이었던 익동에서 ‘익’자를 따고, 정선방에서 ‘선’자를 따서 합성한 것이다.
조선시대 익동에는 제25대 왕 철종 생부의 사저이자 사당인 누동궁(樓洞宮)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까지 철종의 형인 영평군 이경응의 후손들이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부동산 개발업자 정세권이 누동궁 일대를 비롯한 익선동 166번지와 33번지, 19번지 등을 사들여 소규모 필지로 분할해 중소규모의 한옥을 지어 매매 또는 전세 놓으면서 오늘날과 같은 익선동 한옥마을의 맥락을 형성하게 되었다.
현재 관광호텔이 들어서있는 익선동 34-8번지에는 대원각, 삼청각과 더불어 1970~80년대에 3대 요정으로 불린 오진암(悟珍庵)이 있었다. 오진암은 서울시 등록 음식점 제1호이자 1910년대 초 대표적인 상업용 한옥으로, 구한말 화가 이병직이 살았던 집이자 1972년 남북한 냉전체제를 대화 국면으로 이끈 7·4 남북공동성명을 논의한 역사적인 장소였다. 오진암은 2010년 관광호텔이 건립되면서 철거되었는데, 건물 부재들은 부암동 315-3번지로 이축 복원되어 주민들을 위한 전통문화시설 무계원으로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