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
시대
한강 하류에 위치한 은평은 고구려/백제/신라의 접경지역으로 주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백제 때는 ‘위례성’지역에, 신라 때는 ‘신주’지역에 속했으며,
이후 통일신라시대 때에는 ‘한산주’지역에 속했다가 경덕왕 16년 (757년)에 ‘한주’라 했다.
고려
시대
‘한양군’은 고려시대에 이르러 ‘양주’라 불리게 되었다. 이후 문종 21년(1067년)에 ‘남경’으로 승격시켜 서경(평양), 동경(경주)과 더불어 3 소경이라 했다가 충렬왕 34년(1308년)에 ‘한양부’라 했다. 중농정책에 따라 이 지역 농경지를 개간함으로써 생산력이 높아졌고, 한강 수로를 이용하여 수도인 개경으로 농산물을 운송하는 주요 길목으로써의 역할을 했다.
조선
시대
태조 3년(1394년)에 도읍을 ‘한양부’로 옮긴 다음, 한성부라 하여 5부 52방으로 개편했다. 여기서 5부(동, 서, 남, 북, 중)는 지금의 구(區)와 같은 행정단위로, 은평은 북부의 ‘연은방’과 ‘상평방’으로 나뉘었다. 한편 ‘은평’이란 지명은 연은방의 ‘은’과 상평방의 ‘평’에서 따온 것으로, 조선시대에는 서대문 밖 성저십리(城底十里, 도성 밖 10여 리) 지역이었다.
일제
강점기,
광복 후
1910년 국권침탈 이후 한성부가 경성부로 바뀌면서 5부 35방 8면제로 행정구역을 개편했다. 이후 1913년 각 고의 위치 및 관할지역과 부(府), 군(郡)의 명칭이 결정되면서 이듬해 4월 ‘연은방’과 ‘상평방’ 지역에 은평면(36개 동/리 관할)을 설치했다. 은평면은 1913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경기도 고양군에 편입되었다가 1949년 8월 다시 서울시로 편입되었다.
1960년대
이후
1973년 7월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 관내 구파발리와 진관내/외리가 서울시 서대문구로 편입됨으로써 현재 은평 지역의 모습이 갖춰졌다. 1979년 서대문구에서 분리되면서 은평구(15개동)로 거듭났으며, 이후 여러 번의 행정구역 통폐합 절차를 거쳐 2008년 6월 법정동 11개동, 행정동 16개동으로 확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1966년부터 1978년까지 이 지역에 택지조성 사업이 시행됨으로써 농지 형태에서 주거지역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1969~1971년에는 기자촌 주거단지가, 1974~1978년에는 한양 주택단지가 조성되어 연립주택과 다세대 주택이 대규모로 들어섰다.
2000년대
지역 균형발전과 주거환경 개선을 위하여 2002년 10월, 30여 년간 묶여 있던 개발제한구역이 해제되었다. 이후 2011년 10월까지 주택 건설을 비롯한 대규모 개발 사업이 이루어졌다. 또한 지역 내에 한옥마을을 조성함으로써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주거 공간을 꾸밀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