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 처마 밑 형형색색 문양…단청 의미 알면 더 멋져 보이죠 오래된 사찰이나 조선 시대 궁궐에 갔을 때 서까래·기둥이 화려한 색감의 무늬로 장식된 것을 본 적 있나요. 이를 단청(丹靑)이라고 해요. 목조 건축물에 오방색(청·적·황·백·흑)으로 문양을 그리거나 채색하는 예술이죠. 넓은 범위에서는 공예품·조각물 등에 안료를 칠해 꾸미는 것도 단청에 포함하기도 해요. 단청은 그 화려한 아름다움 덕분에 오늘날 다른 예술 장르에서 활용되기도 합니다. 2018년 공개된 아이돌 그룹 블랙핑크의 곡 ‘뚜두뚜두’ 뮤직비디오에는 단청으로 장식한 세트장이 배경으로 등장해요. 이 뮤직비디오는 2021년 6월 기준으로 16억 뷰를 기록했어요. 단청은 언제부터 우리나라 전통 건물에 사용한 걸까요. 또 그 무늬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을까요. 유지민 학생모델과 주혜리 학생기자가 단청에 대해 알아보고 직접 체험하기 위해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북촌단청공방을 찾았어요. 이 공방은 아름다운 한국의 문화유산 단청을 일반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북촌불교미술보존연구소가 서울시와 함께 운영하죠. 소중 학생기자단은 먼저 단청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기 위해 김도래 대표와 마주 앉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문화재 수리 기술자 김도래라고 해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직업에 두 사람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어요. “하하.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요. 오래되고 아픈 문화재를 고쳐주는 의사 선생님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우리나라 건축물에서 단청은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할 만큼 역사가 오래됐어요. 고구려·백제·신라의 역사를 기록한 『삼국사기』에는 화가 솔거가 황룡사 벽에 그린 소나무가 빛바래자 절의 스님이 단청으로 보수했다는 내용이 나오죠. 삼국시대에도 단청이 사찰 장식에 사용된 겁니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지역이나 시대별로 사랑받던 색채나 문양이 달랐을 것 같아요.” 지민 학생모델이 말했어요. “맞아요. 연꽃 문양을 예로 들자면 경상도나 전라도 등 서울을 기점으로 남쪽 지역은 연꽃이 통통해요. 반면 북쪽으로 가면 갈수록 연꽃이 얇아집니다. 색채도 차이가 있어요. 남쪽 지역은 황색 기운이 많은 편이고, 북쪽 지역은 청색 기운이 많이 도는 편이에요. 시대별로도 차이가 있죠. 고려 시대의 단청은 빨간색·파란색을 바탕으로 쓸 만큼 화려했고, 문양도 세밀했어요. 반면 조선 시대에는 단청 색깔이 전체적으로 차분해지고 문양도 단아해졌죠.” “단청은 일반적인 그림과 무엇이 다른가요?” 형형색색 단청으로 장식된 마루를 둘러보던 혜리 학생기자가 말했어요. “목적성이 분명해요. 단청은 건물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용도 외에 목재를 보호하는 역할도 해요. 목재로 지어진 건축물은 벌레와 균, 날씨 변화에 취약한 편이거든요. 사람이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화장을 하듯 목재에 단청을 하는 거죠.” 단청은 문양 종류별로 꽃 모양인 화문, 장수·행복 등 좋은 일을 상징하는 길상문, 여러 형태의 도형을 활용한 기하학문, 봉황·기린·용 등 짐승 모습을 본뜬 금수문 등으로 분류해요. 문양마다 상징적인 의미도 있어요. 화문을 예로 들면 모란은 부귀, 태평화는 태평성대, 여의두화는 만사형통, 연화(연꽃)는 창조, 매화는 군자, 국화는 진심을 뜻해요. 김 대표와 이야기를 나눈 방 곳곳에는 여러 무늬의 단청이 가득했죠. “단청을 칠하려면 어떤 도구들이 필요한가요?” 구석구석 둘러보던 혜리 학생기자가 물었어요. “단청 전문가들의 도구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게 안료와 붓이라고 말할 수 있죠. 안료의 경우 오방색을 사용한다고 아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15~16개의 안료를 사용해요. 채도·명도별로 오방색보다 조금 연한 색이나 진한 색도 있기 때문이죠. 붓은 집돼지 털로 만들어 집 가(家), 돼지 저(?), 털 모(毛)를 써서 가저모(家?毛)라고 불러요. 질감이 굉장히 뻣뻣하죠.” 목조건물에 단청을 입히려면 여러 단계를 거치는데, 화장하는 것과 비슷해요. 일단 세안하고 각질을 제거하듯 단청을 칠할 면을 깨끗하게 닦고 사포질을 해요. 이를 면 닦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미지근한 물에 녹인 아교를 면에 발라 안료가 잘 붙게 준비해요. 화장 전 스킨·로션을 바르는 것과 비슷하죠. 이후 메이크업 베이스를 바르듯 본격적으로 채색에 돌입하기 전 바탕이 될 색을 칠합니다. 기초화장을 마치고 나면 문양을 그려 넣고 색칠해요. 채색을 마친 문양에 먹선·분선으로 외곽선을 그려주는 건 아이라인 그리기와 비슷하죠. 마지막으로 단청이 쉽게 바래지 않도록 아교를 바르는 건 화장이 잘 지워지지 않도록 메이크업 픽서를 뿌리는 것을 생각하면 돼요. 단청을 칠한 서까래를 보면 똑같은 문양을 반복해 사용한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이것은 하나하나 그린 게 아니라 문양에 바늘구멍을 뚫은 다음 가루를 뿌려서 스텐실처럼 도안을 복제한 거랍니다. 그럼 아무리 많은 서까래가 있어도 정확한 문양을 반복해서 그릴 수 있겠죠. “단청 작업에서 제일 어려운 부분은 초본에 해당하는 문양을 그리는 거예요. 문양 완성도에 따라 결과물의 완성도도 좌우되기 때문이죠. 단청 작업에는 여러 장인의 손길이 필요한데, 저는 주로 문양 그리는 단계를 맡아서 하는 편이에요.” 단청은 전통 목조건물에서 주로 볼 수 있지만, 다른 분야에 활용도 가능해요. 공방 한쪽에는 단청 무늬가 그려진 범상치 않은 테이블이 자리하고 있었는데요. 단청 문양을 응용해 김 대표가 제작한 아트 퍼니처(art furniture)입니다. “여기 문양은 천상에 있는 꽃들을 표현한 거예요. 일반적인 단청 문양과는 좀 다르게 생긴 걸 볼 수 있죠. 색깔도 원색이 아니라 은은한 색이에요. 단청은 이렇게 가구나 인테리어에 응용할 수 있죠.” 북촌단청공방에서는 단청의 매력을 일반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여러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지민 학생모델과 혜리 학생기자는 교육팀 소속 최하정 선생님과 함께 화문(花紋)을 이용한 열쇠고리를 만들어보기로 했어요. 다양한 색깔의 안료와 붓, 물통이 이들 앞에 놓였습니다. 지민 학생모델은 여의두화 문양, 혜리 학생기자는 연화 문양을 택했어요. “바깥면부터 칠해나가면 돼요. 색깔을 바꿔 칠할 때마다 붓을 물에 깨끗하게 빨아주세요. 안료는 가라앉기 때문에 사용하기 전 저어줘야 원활히 쓸 수 있어요. 넓은 면은 납작한 붓으로 칠해주면 됩니다. 옷에 안료가 묻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밝고 따뜻한 색을 좋아하는 지민 학생모델은 붉은색 안료로 여의두화 문양의 바깥쪽을 칠하기 시작했어요. 오방색을 활용해 채색하기로 한 혜리 학생기자는 연한 녹색 안료를 먼저 집어 들었죠. 좁은 면을 칠하려니 손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네요. “안료가 다른 면으로 넘어간 것 같아요.”(유) “괜찮아요. 단청 안료는 5분도 안 돼서 금방 마르기 때문에 다른 색 안료로 덮어서 수정할 수 있어요. 실수해도 돼요.”(최) 집중한 듯 입을 꾹 내밀며 채색에 열중하는 소중 학생기자단. 붓질이 어느 정도 손에 익자 채색에도 속도가 붙기 시작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꽃 문양 나무판 위에는 곱디고운 여러 색깔이 내려앉았어요. 마지막으로 얇은 붓에 검은 안료를 묻혀 색깔별로 먹선을 긋고, 외곽에 흰색으로 분선을 넣어 마무리하자 아름다운 열쇠고리가 완성됐어요. 지민 학생모델과 혜리 학생기자가 뿌듯한 표정으로 꽃 문양 단청 열쇠고리를 들어 보였습니다. 궁궐·사찰에서만 보던 단청이 내 손안의 열쇠고리가 되다니 신기하지 않나요. “단청은 중국·일본에도 있어요. 하지만 제작 수준은 우리나라가 압도적이에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예술 중 하나인 거죠. 이렇게 소품을 만들어 가까이 둘 수도 있으니 자긍심을 갖고 즐겨보세요.”(김) 단청은 왜 궁궐과 사찰에서만 보일까 단청의 여러 색깔을 내기 위해 사용되는 안료에는 다양한 재료가 쓰였습니다. 암석을 가루 내 만든 것은 암채(岩彩) 혹은 석채(石彩)라고 해요. 보석으로 분류되는 사파이어·루비 등도 안료의 재료로 사용했죠. 그중 상당수는 중국에서 수입해야 했기 때문에 가격이 매우 비쌌어요. 주먹만 한 소량도 오늘날 기준으로 천만원이 넘어가기도 했죠. 즉, 안료는 예로부터 엄청난 사치품이었던 거죠. 조선 시대엔 사치 풍조 조장을 막기 위해 ‘가사제한령(家舍制限令)’이라는 법을 만들어 국가시설 같은 왕궁이나 사찰에만 단청을 입힐 수 있도록 안료의 사용을 제한했어요. 물론 재력가들이 몰래 집에 단청을 장식하기도 했지만, 불법이기 때문에 진짜 안료를 사용하기는 어려웠죠. 그래서 일반 가옥에 단청을 칠한 경우 보존력이 약해 오래 남아있기 힘들었어요. 오늘날 단청이 남아있는 한옥을 보기 어려운 이유랍니다. 글=성선해 기자(sung.sunhae@joongang.co.kr), 동행취재=유지민(서울 구룡초 4) 학생모델·주혜리(서울 신구초 5) 학생기자,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북촌불교미술보존연구소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저는 서울에 오래 살았지만 한옥이 많은 북촌에는 처음 가봤어요. 처음에는 단청을 그저 궁궐이나 사찰의 장식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각각의 단청 문양에 담긴 뜻을 알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어요.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단청의 보존을 위해 힘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단청을 체험하고 공부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이번 취재를 통해 평소에는 관심이 없었던 단청에 관심이 생겼고, 우리 전통문화에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유지민(서울 구룡초 4) 학생모델 평소에 미술에 관심이 많았고, 서울에 있는 조선 시대 궁궐을 방문했을 때 단청의 아름다움에 감탄한 기억이 있었는데 단청에 대해 취재하게 돼 기뻤어요. 북촌단청공방에 도착했을 때 밖에서부터 보이는 단청의 환하고 고급스러운 색깔 덕분에 기분이 좋았죠. 김도래 대표님께 단청에 대해 여러 가지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전통문화에 대한 대표님의 애정과 자부심을 느꼈어요. 단청 문양을 직접 색칠해 열쇠고리를 만드는 건 예상보다 아주 어려웠는데요. 단청을 만드시는 분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낄 수 있었죠. 주혜리(서울 신구초 5)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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