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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
한옥마을 > 성북

소개

산이 깊고 물이 맑은 성북
성북동 앵두마을과 선잠단지는 서울 사대문 밖에서 처음으로 지정된 한옥밀집지역 중의 하나이다.
앵두마을은 성북동1가 105-11 일대를 말하며, 선잠단지는 성북동 62번지 일대를 말한다.
성북 소개 이미지

역사

성북 역사 이미지

현황

성북 현황 이미지
현황
앵두마을

앵두마을 한옥밀집지역의 면적은 31,245㎡이다. 한옥 38동, 비한옥 131동이 위치하고 있으며 한옥의 비율은 22.5%이다. 앵두마을의 한옥 38동은 가 등급 10동, 나 등급 6동, 다 등급 22동으로 구분된다.

선잠단지

선잠단지 한옥밀집지역의 면적은 5,868㎡이며, 한옥 20동, 비한옥 24동이 위치하고 있고, 한옥의 비율은 45.4%이다. 선잠단지의 한옥 20동은 가 등급 2동, 나 등급 2동, 다 등급 16동으로 구분된다.




성북
역사
성북구의 '성북'이라는 이름은 '성의 북쪽'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1840년 조선시대의 한양을 그린 수선전도에서도 성북이라는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원래 성북은 조선시대에 한양의 둘레를 감싸고 있는 성곽의 북쪽에 있는 지역을 지칭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그 땅의 이름이 되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예전부터 북한산의 남쪽 기슭은 호랑이가 나올 정도로 산림이 우거진 곳이어서 조선의 국왕이 친히 군대를 이끌고 호랑이 사냥을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이 지역은 한양의 사대문 밖에 있긴 하지만 성 밖 10리 안에 있는 곳으로 한성 행정부의 통치를 받는 곳이었으며 동시에 서울 동북쪽의 큰 관문이었다.

혜화문은 동소문(東小門) 이라고도 불렸는데 이곳을 지나서 되넘이 고개(지금의 미아리고개)를 넘는 길은 한양에서 강원도를 거쳐 함경도로 가는 길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 길을 통해 많은 물자들이 오갔는데 특히 한양에서는 생활용품들이 주로 나갔으며 함경도에서는 각종 어물들이 들어왔다고 한다. 앞서 나온 '되너미 고개'라는 지명은 '되놈'들이 한양을 공격할 때 넘어오던 고개라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만일 되놈들이 그 고개를 넘어 동소문까지 공격하면 그 다음은 바로 궁궐이 공격당할 수 있는 상황까지 치닫게 된다. 이처럼 성북은 서울로 들어올 수 있는 중요한 통로였기 때문에 잘 지켜야만 하는 곳이었다. 따라서 동소문과 되너미 사이에 있는 삼선평(三仙坪)이라 불리던 분지에는 병졸들이 무예를 익히는 연무장이 있었다.

조선 중엽에는 이곳에 도성을 지키는 군대인 어영청(御營廳)의 북둔(北屯)을 설치하고 여기에 소속된 군인들과 이 땅을 경작하며 살도록 민간인 한 무리를 보냈다고 한다. 이들이 바로 성북동의 첫 주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처음 그들에게 주어진 "새 땅"은 한마디로 황당한 곳이었다. 험한 산지였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해도 곡식을 길러낼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사람들은 자꾸 도망쳐 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농사를 짓는 민간인들에게는 살기 힘든 곳이었지만,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에게 성북의 산골과 계곡은 도성에서 제일 가까운 사냥터이자 쉼터였다. 뿐만 아니라 궁궐 뒤쪽에 위치하고 있어 성만 넘으면 바로 수려한 자연경관이 펼쳐지기 때문에 조선의 왕자들도 이곳에 별장을 만들어 공부하는 곳으로 사용하였으며, 유명한 문인과 화가들은 거처를 마련하기도 했다. 특히 북둔(北屯)이 있던 곳은 복숭아나무가 많아 늦봄에는 행랑객들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